지난 반세기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보건 의료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2021년 OECD 보건 통계(OECD Health Statistics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국민들의 보건의료 이용 수준이 높고 건강 수준 또한 최상위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오늘 이야기하려는 결핵이다. 대한민국은 2020년 통계를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 사망률 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결핵이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결핵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관심 밖에 놓여있을 때가 많다. 심지어 결핵을 사실상 퇴치된 질병으로 여기는 분들도 많다. 결핵에 대한 오해와 무관심은 결핵 퇴치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오늘은 결핵에 대한 잘못된 상식들을 살펴보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결핵균에 감염되면 무조건 결핵에 걸린다?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결핵균 ‘감염’과 결핵 ‘발병’을 구분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감염은 쉽게 말해 결핵균이 인체에 들어와서 생존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발병은 결핵으로 방사선 사진에 활동성 병소가 확인되거나 임상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결핵균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결핵 발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핵균은 저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병을 일으킨다. 보통 감염된 사람의 10% 정도에서 발병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 10% 가운데 절반 정도는 감염된 지 2년 안에 결핵이 발병한다.
결핵균에 감염되었지만 발병되지 않는 경우는 잠복 결핵이라고 한다. 잠복 결핵도 추후 결핵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잠복 결핵일 경우도 활동성 결핵과 마찬가지로 결핵약을 복용하며 치료받아야 한다.
모든 결핵 환자는 주변에 전염시킨다?
결핵에 걸린 모든 환자가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는 것은 아니다. 가장 흔한 예로, 아무 증상 없이 방사선 사진에서 활동성 결핵이 발견되기도 한다. 보통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다. 주위에 결핵을 전염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결핵이 더 악화하기 전에 치료받아야 한다.
결핵환자 접촉 뒤 방사선 사진 확인을 했는데 정상이니 괜찮다?
그렇지 않다. 최근에 결핵 환자와 접촉했다면, 최소 2년 동안 주의를 기울이며 관찰해야 한다. 성인이라면 이 기간에는 6개월마다 흉부 방사선 사진을 찍으면서 추이를 지켜본다. 어린이라면 투베르쿨린 피부반응검사를 통해서 결핵균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면 결핵약으로 예방치료를 받아야 한다. 참고로, 어린이와는 달리 성인들에게는 투베르쿨린 피부반응검사를 권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결핵 보균자가 너무 많아 피부반응검사가 의미 없기 때문이다.
결핵환자는 수건과 식기 등을 따로 써야 한다?
결핵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다.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는 질병으로,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가래에 있는 균이 다른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서 전염된다. 일반적인 대화 중에도 전염될 수 있고 환자와 가까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전염될 확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수건, 식기는 호흡기 전염 경로가 아니므로 이것들을 굳이 소독하거나 따로 구분하여 사용할 필요는 없다.
결핵약 복용 후 증상이 나아졌다면,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
폐결핵의 치료는 6개월 동안 항결핵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대부분 완치된다. 그러나 결핵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고 임의로 중단하거나 약의 종류를 마음대로 바꾸면 결핵균이 내성을 획득할 수 있다. 결핵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서 내성이 생기거나 처음부터 내성이 있는 균에 감염되었을 경우에는 2차 약을 사용해야 한다. 2차 약은 적어도 1년 6개월 이상 사용해야 하는데 항결핵제에는 3차 약이 없으므로 이것이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런데 항결핵제는 1차 약이 2차 약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고 독성도 적다. 1차 치료로 결핵을 완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으로, 대부분의 항결핵제는 간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복용하는 동안 정기적으로 간 기능을 확인하며 약제를 복용해야 한다. 다른 약을 같이 먹으면 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약의 복용은 피해야 한다.
결핵약을 먹고 있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전염될 수 있다?
결핵약을 복용하고 2주가 지나면 전염력이 소실된다. 사실상 아무 위험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핵 환자들이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결핵 퇴치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결핵약을 복용하고 2주가 지나면 전염력이 소실된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결핵에 한 번 걸리면 다시 걸리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결핵은 한번 걸렸다고 면역이 생기진 않는다. 과거에 결핵에 걸린 사람이 치료받고 완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감염될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결핵은 면역이 없기 때문에 예방접종도 없다. BCG가 있지 않냐고? 이 부분은 다음 질문에서 살펴보겠다.
BCG 접종으로 결핵을 100% 예방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BCG는 결핵 예방접종 주사가 아니다. 그러면 BCG 접종은 아무 소용이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BCG는 결핵 감염 자체를 막지는 못하지만, 결핵균이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들에게 감염되었을 때 치명적인 결핵성 뇌막염이나 결핵성 골수염 등으로 진행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다만, 어렸을 때 BCG 접종을 했더라도 이후에 결핵에 걸릴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핵 퇴치는 우리 모두의 숙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0년 한해 우리나라에서 결핵에 의한 사망자 수는 1,356명으로 법정 감염병 중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코로나19에 의한 사망자 수 922명의 1.5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처럼 결핵은 우리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결핵 퇴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숙제인 이유다. 하루빨리 우리나라에서 결핵이 사라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