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나름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아니, 거창하게 가치관이라고 하지 않아도 좋다. 저마다 종교, 정치, 사회, 과학 등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로 해두자.
때로는 그 입장이 너무 확고한 나머지 자기가 옳다는 걸 넘어서 남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단지 남이 틀렸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비난한다. 상대방이 틀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분명히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예컨대 일부 종교인들은 타 종교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과 거부감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몇몇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이들은 그들과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단순히 동의하지 못하는 걸 넘어서 적개심을 드러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하는 의료계를 돌아보자면, 많은 의사들이 한의사에게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고 마찬가지로 한의사들은 대체로 의사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는다. 이것들은 어찌 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감정의 문제로 비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바스티안 헤르만Herrmann Sebastian은 자신의 책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원제: Gefuehlte Wahrheit | 세바스티안 헤르만 지음 | 김현정 옮김 | 새로운현재 | 2020년 01월 02일 출간』에서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옳고 그름으로 감정의 호불호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호불호에 대한 결정을 먼저 내린 후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고 말한다. 쉽게 생각하기엔 옳고 그름이라는 이성적 판단이 먼저여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성적인 판단에 앞서 감정적인 결정이 먼저 내려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상황을 살펴본다. 이를테면, 익숙한 것에 호감을 나타내는 성향, 일이 점점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는 불안감, 복잡한 사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단순히 무시해버리고 마는 행태, 너와 나의 편 가르기, 다수의 생각에 휘둘리는 습성, 그리고 음모론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까지.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다 보면 마주하는 이성적인 듯 보이는 감정적인 판단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
저자는 이렇게 ‘내가 옳다는 느낌, 내가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느낌’이 실은 매우 주관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디지털화로 말미암아 이러한 주관적 감정을 파고드는 가짜뉴스가 범람하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고 경고한다. 수많은 정보 생산자의 출현으로 거짓과 진실, 소문과 사실을 더욱 구분하기 어려워졌으며, 이는 그러잖아도 감정에 따라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상에 들어맞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남을 이해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제까지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마주할 때는 ‘그들은 왜 그렇게 감정적인가’라는 푸념에 머물렀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 자신의 감정적인 면을 먼저 돌아보려고 노력해야겠다. 남이 감정적인지를 판단하는 그 자체가 나의 감정일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